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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사회(박건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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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05 |
조회 | 49126 | ||
불안사회 고려대 의과대 신경과 박건우 기억장애 클리닉에 71세 A씨가 찾아왔다. ‘’제가 중한 치매가 될 확률이 높다고 통보가 왔어요. 어떻게 해야지요?‘’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역력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초지정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표였다. 그 결과표에 혈관성치매 위험도가 중등도로 나와 있었다. 평소 콜레스테롤 관리와 혈압관리를 등한시 했던 A씨는, 만약 앞으로도 계속 관리를 하지 않으면 혈관성치매의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위험도를 진단으로 오해하고 병원에 온 것이다. 건강검진결과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드린 후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여러 방책을 상의하고 안심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냐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실시하는 건강검진이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고 불안에 떨게 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위험도라는 예측적인 이야기는 이 분에게 약 보다는 독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전 의료계를 휩쓸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나오는 미래 청사진은 건강에 대한 것이다. 빅데이터, 유전자 분석,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메뉴이다. 유전자 빅데이터를 잘 처리하고 인공지능과 연결하면 진단율이 상승한다고 하고, 내가 어떤 병에 걸릴지도 예측한다고 신문지상에서 연일 난리다. 인공지능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질병예측의 미래사회는 과연 건강사회일까? 아니면 불안사회일까?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비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생존을 위해 겨울잠이 프로그램 된 곰은 추워지면 미래를 예측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겨울잠의 프로그램이 없는 인간은 추위가 찾아오면 다가설 식량부족의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음식물을 저장한다. 이러한 현명함으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즉 미래 예측은 인간의 생존과 수명연장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인지 요즘은 참으로 많은 것을 예측하고 싶어한다.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발달하면서 미리 징후를 파악하는 능력이 좋아졌다. 의학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큰 병을 예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런데 지나치면 부족함 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대책 없는 예측이란 불안을 야기한다. 대책 없는 예측의 대량생산으로 불안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A씨는 뇌졸중의 위험도와 심장질환의 위험도도 높게 나와 있었는데, 치매의 위험도만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이 찾아왔다. 당연한 불안이다. 치매에 대한 일반적 상식은 원인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예측은 되는데 대책이 없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가 눈앞에 떠오른다.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잊혀져 가는 자신의 비참함에 더 깊은 불안의 생각을 연결해 간다. 이 악순환에 빠지면 의사가 아무리 오해를 풀려고 해도 쉽게 공포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의 ‘나’라는 정체성은 입신양명의 전통 속에 출세와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래서 직업이 무엇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가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다. 그리고 오래 기억되는 삶을 문화전통으로 계승해 왔다. 기억은 나를 둘러싼 삶을 연결하는 끈이다. 나의 가치를 연결하는 끈이다. 그런데 치매는 기억을 없앤다. 연결이 끊어지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매는 기억으로 연결된 세계와의 분리이며, 사회적 죽음이다. 그래서 치매는 나의 존재를 위협한다. 또한 내가 치매에 걸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다면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고 국가에서 결과표를 보내주었다......... 다행히 국가건강검진 결과표는 내년부터 개정이 된다. 혈관성치매 위험도 예측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 같다. 대책이 있는 예측은 건강사회로 이끈다. 대책이 없는 예측은 불안사회로 이끈다. 인간의 건강을 함부로 예측하면 그로 인해 또 다른 질병이 발생한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은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바라보는 이브의 눈과 얼마나 다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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